누가 ‘브릭스(BRICs)’의 뒤를 이을 것인가.
금융위기 이후 얼어 붙었던 세계 경제는 나라마다 뚜렷한 시차를 두고 회복중이다. 남유럽 위기라는 변수는 아직도 국제증시를 흔들고 있지만, 아시아와 남미의 신흥국들은 오히려 버블을 우려할만큼 호황을 구가 중이다.
새로운 투자처를 향한 글로벌 자금의 발길도 바빠지고 있다.
남들보다 먼저 신흥시장에 투자해 노다지를 캤던 투자자들은 새로운 금광을 찾기 위해 눈을 번득이며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처럼 앞으로 쭉쭉 뻗어나갈 잠재력을 가진 나라는 과연 어디일까.
조선일보와 조선비즈닷컴은 조선비즈닷컴 창간 기념으로 ‘프론티어 마켓을 가다’ 시리즈를 마련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보고서와 금융투자협회의 조언을 기초로 차세대 브릭스의 후보로 유력한 10개국을 선정, 말레이시아의 붐비는 금융가부터 페루의 빽빽한 밀림지대까지 현장을 취재했다. 이 중에는 글로벌 경기침체에 아랑곳없이 벌써부터 호황을 누리는 나라도 있고, 아직 금융위기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나라도 있다. 그러나 무한한 잠재력과 불확실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편집자주]
사막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만년설과 빙하로 뒤덮힌 해발 5000?의 안데스 산맥을 넘어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밀림을 가로질렀다.
지난달 21일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남부 유전지역인 말비나(Malvina)까지 가는 1시간15분의 짧은 비행동안 사막은 밀림이 됐고, 계절은 여름에서 겨울을 거쳐 다시 여름으로 변했다. 아마존의 상류인 우루밤바(Urubamba) 강은 밀림 속을 꿈틀거리며 브라질쪽으로 이어졌다.
이곳엔 SK에너지가 투자해 17%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남미 최대의 가스유전 ‘까미세아(Camisea)’ 광구가 있다. 밀림 한복판에 자리잡은 여의도 절반만한 규모의 거대한 정유공장은 자체 비행장과 헬기장, 항구를 갖춘 하나의 도시였다.
페르난도 칸시노 현장 책임자는 “대부분의 건축자재는 브라질을 거쳐 아마존 강을 통해 여기까지 왔다”며 “이 의자의 운송 비용이 의자보다 비싸다”며 웃었다.
투자자들은 아마존 상공에서 돈을 뿌려대고 있었다. 비행장에서 내려 유전개발 현장까지 들어가는 왕복 헬기 비용만 1인당 5000달러에 달한다. 모든 전화는 위성전화, 식자재는 비행기로 운송된다. 현장에는 1200~25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수시로 출입하고, 밀림 속 유전 현장까지 모든 자재는 헬기로 수송된다. 지금껏 이 곳에 투자 된 비용만 23억 달러, 2014년까지 총 34억 달러가 투자된다.
밀림에 뿌려진 돈은 페루를 살찌우고 있다. 지난 2000년 이후 페루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6%에 달했고, 2008년엔 무려 9.8%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경제위기 중인 지난 2009년에도 1%의 플러스 성장을 이뤄냈다. 눈치빠른 중국은 페루의 광산과 유전개발에 120억 달러란 엄청난 투자를 약속했다.
SK에너지 유한진 상무는 “페루는 유전부터 광물까지 모든 지하자원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며 “아직 탐사가 안된 곳이 많아 잠재력은 측정조차 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남미 최대’ 아마존 밀림 속 까미세아 가스유전에 몰려드는 투자자들
-은 생산량 세계 1위, 아연 2위, 구리 3위, 금 6위…국토면적의 1%만 탐사됐을 뿐
-2000년 이후 연평균 6% 성장
◆ ‘개방대통령’으로 다시 태어난 과거의 ‘극좌 대통령’ 가르시아
까미세아 유전 개발역사는 현대 중남미 이념대결의 압축판이다.
까미세아 광구는 원래 1980년대 영국의 석유메이저 ‘셸’이 개발해 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1985년 36살의 나이로 대통령이 된 뒤 은행국유화와 외채지불제한 등의 극좌(極左) 정책을 쏟아낸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의 눈에는 ‘수탈자’에 불과했다. 그는 북한 대사관의 리마 개관을 허락했다.
셸은 페루를 떠났고, 페루 경제는 7000%의 인플레이션과 식량난으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이때의 실정과 부패스캔들로 가르시아 대통령은 임기 후 10년간 망명 생활을 해야했다.
지난 2006년 대통령 선거에 다시 나선 그는 “젊어서 실수했지만 지금 나는 변해 있다. 극단적 이념을 채택해 페루가 밀려나선 안 된다”며 좌파 후보를 몰아붙여 21년만에 다시 대통령이 된다.
북한 대사관을 열었던 대통령은 한국과의 FTA협상에 나서고 지난해 한국 방문 때는 “경제 성장이 놀랍다”며 파격적으로 체류일정을 늘리기도 했다. 또 중국과의 FTA는 체결했고 일본·EU 등과도 동시다발적인 FTA를 추진하고 있다.
그 사이 까미세아는 1999년 재입찰에 들어갔고 한국 SK에너지가 주요 투자자 중 하나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페루투자청 해리 창 아시아 투자담당관은 “까미세아의 가스를 가공할 수 있는 38억 달러의 ‘페루LNG’ 프로젝트가 올해 안에 끝난다”며 “두 프로젝트는 페루 변화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페루LNG에도 SK에너지가 20%의 지분투자를 하고 있다.
◆ 파낸 가스의 30%만 사용, 무한한 잠재력
까미세아 3광구 시추현장. 헬기 한 대가 길이 10미터쯤되는 거대한 철골 5개를 땅으로 내리자 작업자들이 움직여 차곡차곡 쌓았다.
개발담당 빅토르 소리아노씨는 “이곳 현장에만 하루에 200만 달러의 비용이 들어간다”며 “앞으로 60일안에 지하 3800미터까지 뚫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까미세아에서 생산된 가스과 원유는 57개의 강과 3개의 터널을 지나 4864?의 안데스 고봉(高峰)을 넘는 750㎞의 대장정을 거쳐 리마에 도착한다. 이 가스가 페루 국내 소비의 80%를 공급한다.
유 상무는 “지금도 이곳에서 생산하는 가스와 원유는 30%만 보내고 나머지 70%는 다시 땅속으로 넣어 저장하고 있다”며 “올 연말 액화LNG공장이 완공되면 나머지 70%가 수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페루는 석유뿐만 아니라 은 생산량에서 세계 1위, 아연 2위, 구리 3위, 금 6위의 대표적인 자원 부국이다. 광물이 수출의 65%를 차지하고 있지만 아직 국토면적의 약 1%만이 탐사됐을 뿐이다. 2015년까지 석유를 제외한 25개 대형 광업투자에만 300억 달러의 투자가 예정돼 있다.
WRITTEN BY
- 제갈광명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 유한한 삶에서 조금이나마 의미있는 일을 남기고 떠나자. 조금더 행복해질 것.